- 백제시대 : 복홀군(伏忽郡 )이라 칭함(성터 : 화방리 백운산 선인봉 하 장동 일대)
- 고려말 : 보성군에 속함(성터가 현 보성읍내로 이전)
- 구한말 : 미륵면(彌勒面)이라 칭함(행정구역 7개리)
- 1919년 : 미력면(彌力面)으로 개칭
- 1949년 : 면사무소 신축(1952년 공비에 의해 소실)
- 1958년 4월 : 면사무소 신축(노후로 1985. 2. 8. 파옥)
- 1985년 11월 15일 : 현 청사 입주(1985. 6. 20. 정초)
일반현황
동쪽은 겸백면(兼白面), 남쪽은 득량면(得粮面)과 보성읍, 서쪽은 노동면(蘆洞面), 북쪽은 복내면(福內面)과 접한다.
행정구역
| 법정리 | 행정리 | 반 | 자연마을 |
|---|---|---|---|
| 7 | 16 | 35 | 33 |
면 적
(단위 : ha)
| 면적 | 전 | 답 | 임야 | 기타 |
|---|---|---|---|---|
| 3,077 | 231 | 566 | 1,803 | 477 |
가구 및 인구
(단위 : 명)
| 인 구 | 가 구 | ||||
|---|---|---|---|---|---|
| 계 | 남 | 여 | 계 | 농가 | 비농가 |
| 1,314 | 667 | 647 | 823 | 642 | 181 |
도로·하천
| 도로(53.7km) | 하천(17개소) | ||||
|---|---|---|---|---|---|
| 철도 | 국도 | 지방도 | 기타 | 지방2급 | 소하천 |
| 2.4 | 8.8 | 6.7 | 40.9 | 3 | 14 |
기관 및 복지시설
| 기관 | 복지시설 | |||||||||||
|---|---|---|---|---|---|---|---|---|---|---|---|---|
| 학교 | 우체국 | 농협 | 병원 | 환경사업소 | 한국도로공사
보성지사 |
국도유지
출장소 |
마을회관 | 경로당 | 우산각 | 교회 | 사찰 | 법당 |
| 2 | 1 | 1 | 1 | 1 | 1 | 1 | 22 | 21 | 38 | 2 | 2 | 1 |
문화재
- 지방지정 유형문화재 제165호(문익점 부조묘)
- 지방지정 무형문화재 제37호(미력옹기 이학수)
도로 29.24km
- 국 도 : 3개노선 12.04km (2호선, 18호선, 29호선)
- 지방도 : 2개노선 9.2km (895호선, 843호선)
- 군 도 : 1개노선 8.0km
철도
- 2.4km (경전선)
하천 23.4km
- 지방2급: 4개소 13.5km (보성강, 봉화천, 미력천, 장동천)
- 소하천 : 15개소 9.9km
학교 및 병원
- 학교 : 2개교 (미력초등학교,용정중학교)
- 병원 : 1개소 (보성종합병원)
오시는길
- 광주 → 화순 → 이양 → 예재터널 → 복고개재 → 미력면
- 광주 → 화순 남면 → 보성 문덕면 → 복내면 → 미력면
삼우당
- 지방유형문화재 제165호로 지정된 삼우당은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처음으로 가져온 충선공 문익점 선생의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오는 과정과 조선조 태종께서 선생의 공을 찬양하시고 은전을 베푸신 내용들이 상세히 기록 되어있는 비석이 있으며, 비문은 이조판서인 우암 송시열이 썼다.
- 위 치 : 미력면 도개리 528-1 연락처 : 061-853-7799(문영종)
보성강 낚시터
보성강 상류인 미력면 도개마을 앞 똥뫼에서 보성강 댐에 이르는 약4km 구간은 붕어, 잉어등이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계절에 관계없이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천혜의 낚시터임
위생사업소
- 남도민의 젖줄인 주암호의 수질을 보존하기 위하여 130억원을 투자하여 2000년 6월에 준공 하였으며 산화구 공법으로 1일 3,000㎥의 생활오수를 처리하고 있음.
- 위 치 : 미력면 덕림리 785 연락처 : 853-0271∼3
대룡산
미력면과 득량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438m의 어머니 품과같은 산으로용지교 앞의 등산로를 따라 약2km를 거슬러 올라 정상에 이르면 도내에서 유일한 수력발전원인 보성강 댐과 득량만의 넓은 바다가 시야에 펼쳐져 산행인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아름다운 산임.
석호산
미력면과 겸백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425m의 산으로 대인 대관을 배출할 복호라는 명당이 있다는 소문이 중국까지 알려져 원나라 장군 홀필열이 이 명당을 찾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와 보성강변(둔터)에 주둔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산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