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죽천, 도산서당에서 퇴계를 만나다. (6)
- 등록자
- 김세곤
- 작성일
- 2012.02.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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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당전경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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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죽천, 도산서당에서 퇴계를 만나다. (6)
서당에서 왼편으로 담이 있는 데 여기에 소나무 · 국화 · 대나무 · 매화가 심어져 있다. 퇴계가 절의를 상징하는 네 가지 식물을 심고 샘 위의 산기슭을 파서 암서헌과 마주 보도록 평평하게 단을 쌓고는, 그 위에 매화ㆍ대나무ㆍ소나무ㆍ국화를 심어 절우사(節友社)라 불렀다. 절우사는 절개를 지닌 친구들의 모임이란 의미 같다.
<도산기>에는 퇴계가 이곳에서 산책을 즐긴 글이 실려 있다.
나는 늘 고질병을 달고 다녀 괴로웠기 때문에, 비록 산에서 살더라도 마음껏 책을 읽지 못한다. 남몰래 걱정하다가 조식(調息)한 뒤 때로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상쾌하여, 우주를 굽어보고 우러러보다 감개(感槪)가 생기면, 책을 덮고 지팡이를 짚고 나가 단에 올라 절우사를 찾기도 하며, 밭을 돌면서 약초를 심기도 하고 숲을 헤치며 꽃을 따기도 한다.
그러면 <도산잡영>에 있는 절우사 시를 감상하여 보자
절우사 節友社
소나무와 국화 도연명의 동산에
대나무 더불어 셋인데
매화 형, 너는 어이하여
함께 들지 않았던가?
내 이제 바람과 서리의
서약 함께 맺었으니
굳은 절개 맑은 향기
너무나 잘 이해하네.
松菊陶園與竹三 송국도원여죽삼
梅兄胡奈不同參 매형호나불동참
我今倂作風霜契 아금병작풍상계
苦節淸芬儘포諳 고절청분진포암
이 시를 좀 더 자세히 음미하여 보자. 먼저 제1구이다.
소나무와 국화, 도연명의 동산에
대나무 더불어 셋인데
松菊陶園與竹三
이 구절에는 도연명의 동산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 국화, 대나무가 나온다. 도연명의 동산은 바로 그의 시 <귀거래사>나오는 세 갈래길, 즉 삼경 三徑이 있다.
귀거래사를 읽어 보자.
귀거래혜사
자, 돌아가자. 歸去來兮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미 내가 잘못하여 스스로 벼슬살이를 하였고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혼자 한탄하고 슬퍼만 하겠는가?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
(중략)
마침내 저 멀리 나의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나는 기쁜 마음에 뛰었다. 머슴아이가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 자식들은 문에서 나를 맞는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온통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시들지 않고 그대로 있다. (三徑就荒 松菊猶存)
바로 여기의 ‘삼경취황 송국유존’의 삼경, 즉 세 갈래 작은 길에 심어진 것이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국화이다.
원래 삼경이란 말은 한나라의 연주자사 장후가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하면서 정원 안에 소나무, 대나무, 국화가 심어진 세 갈래 길을 내 놓고, 구중과 양중이라는 친구만 오게 하여 놀았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인데, 나중에는 은자의 거처를 삼경이라고 하였다.
이왕이면 귀거래사의 마지막 부분도 읽어보자.
아, 이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부귀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오.
또 죽은 후에 천제가 사는 천국에서 살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때가 좋다 생각되면 혼자 나가서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를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랴.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귀거래사를 지은 이는 바로 퇴계가 어릴 적부터 흠모한 도연명(陶淵明 : 365-427)이다. 도연명. 그는 중국 강서성 구강시의 시상 柴桑이라는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시상은 양자강 중류에 있으며 북으로는 여산 廬山을 등에 업고 남으로는 파양호를 바라보고 있는 명승지이다. 그는 29세부터 관리 생활을 시작하여 몇 번의 벼슬을 하다가 41세에 팽택 현령을 사직한 뒤에는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그는 <귀거래사>를 쓴다.
귀거래사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시상마을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 선언문이기도 하다. 도연명은 63세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23년간을 고향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은일시인(隱逸詩人),’ 혹은 ‘전원시인(田園詩人)’이라는 평에 걸맞게 많은 시문을 남기었다.
그가 살았던 시절인 동진 말엽에서 송나라 초기는 왕실의 세력이 약화되고 군인세력이 커진 때였으며 농민 봉기와 반란, 그리고 사회혼란으로 백성들이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리고 출사(出仕)와 퇴은(退隱)의 문제를 고민하는 도연명 문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제2구를 음미하여 보자.
매화 형, 너는 어이하여
함께 들지 않았던가?
梅兄胡奈不同參
퇴계는 매화에게 묻는다. “그런데 절의의 상징인 매화야, 도연명의 정원에는 왜 빠져 있느냐?”
퇴계는 유독 매화를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다. 그는 평생 107수의 매화시를 지었는데 그중에서 91수를 모아서 손수 <매화시첩>이라는 책도 만들었다.
퇴계가 얼마나 매화를 좋아하였는지는 그가 별세한 날에 마지막 한 말이 매화에게 한 말이었다.
이 날 아침(1570년 12월8일) 모시고 있던 사람에게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시었다. 오후 다섯 시경에 누운 자리를 정돈하라 하셨다. 부축하여 일으키니, 앉으신 채 조용하게 떠나 가셨다.
- 퇴계집 ‘연보에서’-
<도산잡영>에도 1566년 봄에 소명을 사양하고 다시 산에 돌아와
매화에게 묻고 매화가 답하는 시가 두수 실려 있다. 시를 읽어보자.
도산으로 매화를 찾다
묻노라 이 산중에, 두 그루 백옥 신선
어이 봄 빛 기다리어, 온갖 꽃 피는 철까지 이르렀나.
이제 서로 만났으나, 양양 객사와 같지 않아
추위를 비웃으며, 나의 앞에 다가오네.
爲問山中兩玉仙 위문산중양옥선
留春何待百花天 유춘하대백화천
相逢不似襄陽館 상봉하사양양관
一笑凌寒向我前 일소능한향아전
1566년 정월부터 퇴계는 명종으로부터 공조판서 벼슬을 제수받아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눈이 녹지 않아 예천에 머물렀는데 병이 났다. 퇴계는 사직소를 올리고 다시 도산으로 돌아왔다. 이 시는 퇴계가 도산에 와서 절우사에 핀 매화를 보고 지은 시이다.
매화를 대신하여 대답하다〔代梅花答〕
나는 바로 포옹이라 환골한 신선인데
그대는 요동에 돌아온 학이라 하늘에서 내려왔네.
서로 만나 한 번 웃음 하늘이 이미 허락하니
양양관의 매화와 전후를 비교하지 마시게.
我是逋翁換骨仙 아시포옹환골선
君同歸鶴上遼天 군동귀학상요천
相逢一笑天應許 상봉일소천응허
莫把襄陽較後前 막파양양교후전
여기에서 포옹(逋翁)은 송나라 때 은자인 임포(林逋 967~1028)를 말한다. 임포는 매처학자 (梅妻鶴子)라 하여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아 일생을 살았다 한다. 그의 시 “산 동산의 작은 매화(山園小梅)”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 시는 매화가 퇴계에게 대답한 것처럼 의인법을 써서 지은 시이다.
매화와 퇴계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이다. 너무나 사로 사랑을 하고 있다.
퇴계는 도산서당에서 공부를 하고 산책을 하면서 시를 읊었다. 죽천 또한 1566년 겨울 동안에 퇴계와 같이 있으면서 암서헌에서 수업을 받고 퇴계와 문하생들과 함께 토론도 하였으리라. 그리고 때로는 퇴계와 함께 절우사에서 송 · 국 · 죽 · 매를 완상하며 산책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퇴계는 죽천에게 자기가 지은 매화시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퇴계는 시를 짓고는 남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하였다. 퇴계가 고봉 기대승에게 자신의 매화 시 8수를 주고 고봉이 차운시를 다시 보낸 일화는 웬만한 조선 선비들들 다 아는 일이다.
이제 도산서당을 나온다. 아쉽지만 작별이다. 사립문인 유정문(幽貞門)으로 나오면서 유정(幽貞: 그윽하고 정갈한)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