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죽천, 도산서당에서 퇴계를 만나다. (4)
- 등록자
- 김세곤
- 작성일
- 2012.02.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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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죽천, 도산서당에서 퇴계를 만나다. (4)
도산서당 왼편에는 기숙사가 있다. 기숙사는 공 工자 형태이다. 집 두 채가 연결되어 있다. 퇴계는 제자들이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의미에서 기숙사를 공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단다.
기숙사는 모두 여덟 칸이다. 공부하던 동편마루는 시습재(時習齋), 휴식하던 서편마루는 관란헌(觀瀾軒), 침실은 지숙료 (止宿寮)라고 이름 지었다. 기숙사 이름은 농운정사(隴雲精舍)로 붙이었다.
농운정사를 구경하다가 죽천에 대하여 생각이 미친다. 아! 바로 이곳에서 죽천이 1566년 겨울에 숙식하였구나. 관란헌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휴식하였고, 시습재에서 동문들과 성리학에 대하여 토론하였겠구나. 지숙료에서는 잠을 잤을 것이다. 그런데 죽천은 독방을 썼을까, 아니면 몇 사람과 같이 잠을 잤을까? 같이 잠을 잤다면 한 방에 몇 명이 잤을까? 당시에 죽천과 같이 공부한 퇴계의 문인들은 누구누구 이었을까. 처남 문위세도 같이 공부하였을까. 해남의 윤강중, 윤흠중은? 기숙사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방이나 마루는 들어갈 수가 없다.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도산잡영>책을 펼치었다. ‘농운정사’ 시를 찾았다
농운정사 隴雲精舍
늘 도홍경의
언덕 위의 구름 사랑하거늘
다만, 제 스스로 즐기기만 할 뿐
임금님께 보내드릴 수는 없다네.
늘그막에 집 하나 얽어
그 가운데 누워서
한가로운 정취 절반은
들 사슴과 나누어 갖네.
常愛陶公隴上雲 상애도공농상운
唯堪自悅未輸君 유감자열미수군
晩來結屋中間臥 만래결옥중간와
一半閒情野鹿分 일반한정야녹분
농운정사란 이름은 도홍경과 관련이 있다. 중국 양(梁)나라의 은사(隱士)인 도홍경(陶弘景: 451-536)의 시에,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언덕 위에 흰 구름이 많네. 그런데 내 스스로 기뻐할 뿐, 이것을 가져다가 임에게 줄 수는 없네.[山中何所有, 隴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란 구절이 있다. 산속에서 살던 도홍경이 임금 앞에 나갔다. 임금이 산중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그 때 도홍경은 이렇게 시를 읊었단다. 언덕위의 구름을 임금에게 가져다 줄 수는 없노라고.
퇴계는 이 뜻을 취하여 정사(精舍)의 이름을 언덕위의 구름, 즉 농운(隴雲)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도홍경은 누구인가? 그는 시인이고 한의사이며 자연주의자이다. 또한 그 당시 유명한 도교 사상가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도홍경은 젊은 나이에 궁중에 들어가 황제의 자녀들을 가르쳤다. 492년에 그는 난징 남동쪽에 있는 구곡산(九曲山)으로 들어가 칩거하면서 도교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생활에 열중했다. 산 속에 지은 그의 은둔처에서 온 가족이 그의 정신적 지도를 받으며 생활했다. 도홍경은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조언자이자 친구였다. 그는 산 속에 은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504년에 도교가 완전히 금지된 뒤에도 그의 종파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도홍경은 구곡산에 은거하면서 도교의 원류인 노장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도교의 일상 수양방법을 재형성하려고 애썼다. 또 적절한 식이요법과 생활방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주요한 의약서 가운데 하나인 <신농본초경집주 神農本草經集注>를 저술했다.
한편 학생들이 공부하던 동편 마루는 시습재 (時習齋)이다. 시습 時習이라. 이 단어는 <논어> 맨 첫머리 ‘학이편’에 나오는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의 시습 時習 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학습의 즐거움. 학문의 희열.
그러면 퇴계가 지은 ‘시습재’ 시를 읽어보자
시습재 時習齋
날로 밝음과 정성 일삼음
새가 자주 나는 것과 비슷하고
거듭 생각하고 또 실천하여
그 때 그 때 쫓아가네.
얻음 깊어 감은
바로 공부 무르익음에 있으니
어찌 진귀한 것 익혀
입과 턱만 즐겁게 만들겠는가?
日事明誠類數飛 일사명성류삭비
重思複踐趂時時 중사복천진시시
得深正在工夫熟 득심정재공부숙
何재珍烹悅口頤 하재진팽열구이
명성 明誠을 일상으로 함은 새가 자주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는 구절이 바로 시습이다. 주자학의 창시자 주희는 <논어집주>에서 ‘습習은 새가 자주 나는 것이니, 배우기를 그치지 않음을 마치 새 새끼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기숙사 마루의 이름 하나에도 그 의미를 부여하는 퇴계의 정성이 대단하다. 제자들에게 꾸준히 학습 할 것을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느낀다. 시습재 시의 첫 구절에 논어 첫 머리 학이장과 ‘논어 집주’의 해석이 들어 있다. 한시를 알려면 사서삼경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사서삼경을 한 두 번이라도 읽어 보아야 한다. 아니면 이 책들을 곁에 두고 가끔 관련 부분을 찾아보기라도 하여야 한다.
이어서 관란헌을 구경한다. 관란헌은 휴식하는 서편 마루이다. 자세히 보니 앞이 툭 트여 있다. 이곳 관란헌에서 바라보면 낙동강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겠다. 한번 관란헌 마루에 앉아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쉽게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관란헌 觀瀾軒
넘실넘실 흘러가는
저 이치 어떠한가?
이와 같구나. 일찍이
성인께서 탄식 하시었다네.
본래부터 도의 본체
이것으로 볼 수 있으니
공부 중간에 끊어지는 일
많지 않게 하려무나.
浩浩洋洋理若何 호호양양이약하
如斯曾發聖咨嗟 여사증발성자차
幸然道體因玆見 행연도체인자견
莫使工夫間斷多 막사공부간단다
물결이 흐르는 것을 본다는 의미의 관란 觀瀾은 맹자 <진심장, 상>에 나오는 글귀이다. 그러면 <진심장>을 읽어 보자
진심장(상) 제24장 군자의 도에 대한 추구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동산 東山에 올라가 노 魯나라를 작다고 여기셨고, 태산 太山에 올라가 天下가 작다고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어지간한 강물은 그의 관심을 끌 수 없고, 성인 聖人의 문하 門下에서 배운 사람은 여간한 말은 그의 관심을 끌 수 없다.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아야 한다. (관수유술 필관기란 觀水有術 必觀其瀾) 해와 달은 밝음(明)이 있으니, 빛(光)을 받아들이는(容) 곳에는 반드시 비춘다.
흐르는 물은 그 웅덩이(科)를 채우지 못하면 흘러가지 않는다.
군자가 君子가 도道를 추구함에 있어서도 일정한 성취를 이루지 않으면 통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맹자의 이 말은 유학의 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과 군자의 도를 추구하려면 점진적이고 쉼 없이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배움은 마땅히 점진적으로 하여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어서 지숙료를 구경한다. 지숙료 (止宿寮)는 잠자는 침실이다. <도산기>에는 숙소가 8채라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한 방에 5명이 잔다하면 40명이 기숙을 할 수 있다. 그러면 40명의 제자들은 어떻게 공부를 하였을까. 퇴계는 수업을 몇 시간이나 하였을까. 강의과목은 무엇이었을까. 죽천은 퇴계에게서 무슨 공부를 배웠을까. 나이 41세의 죽천이 퇴계로부터 배운 것은 단순하게 사서오경 강독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자전서를 읽다가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퇴계가 답하는 문답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산책 하면서 서로 대화를 하였으리라. 마치 소크라테스식 문답식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우연히 퇴계집의 ‘퇴계언행록’에서 퇴계의 교육법을 찾았다. 퇴계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의 회고이다.
배우는 자들이 가르침을 청하면, 각자의 자질의 깊고 얕음에 따라 알려 주시되, 만일 깨닫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자세히 설명하여 알아듣게 하고야 말았다.
깨우쳐 주고 이끌어 주심에 있어서, 싫어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아서, 병중에도 강론을 멈추지 않았다. (후략)
퇴계는 지숙료 止宿寮에 관하여도 시를 남긴다. 퇴계 이황, 그는 시 짓기를 즐거워하고 기록 남기기를 참 좋아한다.
닭 잡고 기장밥 지어
잠깐 그대 붙들지 못함 부끄러우나,
나 또한 처음에는
새와 짐승 같은 무리 아니었다네.
원컨대 스승 따라
바다로 떠다닐 뜻 가지고
침상 나란히 하고
밤새워 자세히 이야기나 해 보세
愧無鷄桼謾留君 괴무계칠만유군
我亦初非鳥獸羣 아역초비조수군
願把從師浮海志 원파종사부해지
聯床終夜細云云 연상종야세운운
밤새도록 침대를 나란히 하고 스승과 제자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대화이고 소통이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이야기 하면서 학문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 교육이고 대화법이다. 요즘 사람들은 어떠한가. 교수와 제자 사이에 진정한 멘토가 많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