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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 서재필 다큐멘터리

글번호
299386
작성일
2018.09.29 18:39
조회
488
한국인 최초 미국시민권자

한국인 최초로 미국 의사 자격 획득

필립 제이슨 Phillip Jaisohn

Phil Jai soh 필재서 서재필

서재필생가 1864년 전남보성군 문덕면 가천리 출생

광주MBC보성군 공동기획 남도는 깊다

13세에 임시과거시험 전강(殿講)에 장원급제했던 수재

하지만 급변하는 구한말 정세

21세에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갑신정변을 주도

하지만 정변실패 후 대역부도(大逆不道)죄인이 되어 부모는 음독 자살

형제,외가,처가,처자식 까지 몰살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갖은 고초끝에 독학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미국 개업의가 되지만

(의사증명서, Dr.Phillip Jaisohn의 진료복)

10년만에 조국의 부름을 받는다

1896년 중추원 고문에 임명된 그의 관심은 정치참여가 아니라 신문발간을 계획

"조선의 독립은 오직 교육, 특히 민중을 계발함에 달렸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신문발간을 계획" (그가 주필 겸 사장으로 1896년 4월 7일 창간한 독립신문-훗날 신문의 날로 지정)

한국 최초의 순한글신문이자 한국언론의 정신사적 원류가 된 신문

"모두 언문으로 쓰는 것은 남녀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하려 함이요,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펼 것이다." - 1896.4.7 독립신문 창간호 서재필의 논설 중

독립신문 창간 이듬해 그의 주도로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이 건립된다

그리고 1898년 한국 자유민권운동의 효시가 된 만민공동회 주관

"독립은 허장성세만으로 될 수 없다. 독립의 가장 근본적 요소는 각성한 민중이다." - 1898년 서재필

(서재필 기념공원 전남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각성한 민중이 시대를 이끌어 간다고 믿었던 시대의 선구자 서재필

그의 걸음걸음이 전남 보성땅에 남아있습니다.

광주 MBC 보성군공동기획 남도는 깊다 Deep History of Nam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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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20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