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홍교
홍교는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다.
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조선 영조 5년(서기 1729년)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아노가 습성 두 선사가 지금의 홍교를 건립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에 지정되어 있다.
벌교(뗏목으로 잇달아 놓은 다리,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지음) 라는 지명은 다름이 아닌 '뗏목다리'로써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보통명사다.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뗏목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 홍교는 벌교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도 이 근원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여러 사건을 통해서 그 구체성을 은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 가지에 붙어 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태백산맥 1권 257쪽)」
3간(間)의 홍예(虹霓)를 연결축조하고 석교로서 외벽과 난간에 변모가 적지않게 나타나 있다. 궁융형(穹隆形)으로 된 이 석교는 각처에 있으며 또한 선암사(仙岩寺) 승선교(昇仙橋)와 함께 구조형식이 아주 뚜렷한 예이다.
궁륭형 교량은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부터 있어온 터이며 국내의 유례로서도 불국사의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등이 있다.또 각지의 조선시대 석빙고(石氷庫) 등에서도 천정가구(天井架構)에서는 이러한 홍예와 동류의 기법을 보이는 유구(遺構)들이 있다.한편 이러한 축조형식은 성문등에서도 흔히 이용되어 온 것이다.
이 홍교는 원래 숙종(肅宗) 44년(1718)에 당시 낙안현(樂安縣)의 주민들에 의해 현지에 떼다리(강과 해류가 교차하는 곳에 원목을 엮어 놓은 다리)를 놓았는데 영조 4년(1728년) 에 전남도 지방에 내린 대홍수로 이 다리가 유실되자 그 이듬해 선암사 주지 호암화상 (護岩和尙(약휴:若休))이 제자인 초안선사(楚安禪師)를 화주(化主)로, 습성대사(習性大師) 를 공사감독으로 천거 착공하였으며, 이 공사는 6년후인 영조10년(1734)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위 내용은 선암사 승선교 근처에 홍교비에 승선교 조성내용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이 홍교는 1981∼1984년까지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호예의 밑부분과 석교 외벽의 시멘트를 제거하고 모두 화강암으로 교체하여 원형을 되찾았다.
◈ 문화재 정보
명 칭 : 벌교홍교
지정번호 : 보물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벌교읍 벌교리 154-1
규 모 : 길이 32m, 홍예고 4m
재 료 : 화강암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보성군
관리자(관리단체) : 보성군
※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