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선일여의 문인다도
차가 선비의 굳은 충절과 같다는 말은 차나무가 상록수로서 겨울의 눈보라를 능히 이겨내고 봄을 맞는 세한의 정신이 있듯이 선비가 굶주림과 출세의 유혹을 물리치고 절의와 기개를 지키는 꿋꿋한 정신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차 문화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왔으나 고고하고 청정한 선비정신과 사원의 다선일여 사상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이러한 사상은 승려뿐 아니라 선비들도 마찬가지여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한 잔의 차는 바로 참선의 시작이요, 차의 맛은 선의 맛"이라고 하였다. 천 년이 넘는 생활문화로서 다도를 발전시켜 맥을 잇고 음다풍속의 주도적 역할을 한 계층은 문사들이었다. 한국 차 문화의 전성기이자 문인다도가 꽃을 피운 때는 고려 중엽인 12세기부터 조선 초인 15세기까지와 조선 말엽 18∼19세기이다. 한국의 문인다도는 문장가보다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색이다.
모택동이 즐겨 마신 대홍포
중국 황제들이 마시던 명차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홍포. 이는 현대에 들어 모택동과 정부 고관, 국빈급 외국 손님만 맛볼 수 있는 귀중한 차로 모택동이 말년까지 건강할 수 있었던 빌결이 바로 '대홍포'라는 설도 있다. 연간 1㎏도 채 되지 않는 대홍포의 차나무는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암벽에 위치하기 때문에 원숭이에게 붉은 옷을 입히고 과실을 먹여 배가 부르게 한 다음 찻잎을 따게 했기 때문에 '대홍포'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