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박물관

나라에서 차가 나오는 경우는 신하가 죽었을 때, 감형(憾形)할 때, 북조(北朝)의 사신이 왔을 때, 원자(元子)가 탄생했을 때, 공주가 태어났을 때, 공주가 시집갈 때, 고관(高官) 회의 때, 대관전에서 군신이 연회할 때, 연등회(燃登會)를 열 때, 팔관회(八關會)를 베풀 때 그리고 왕자를 책봉할 때 행해졌다. 이처럼 고려 전반에 걸쳐 왕, 귀족, 관리, 선비와 일반 백성들 모두 일상적으로 차를 즐겼으나 초엽에는 귀족 중심의 차 문화였고, 무신의 난 이후 중엽부터는 주로 선비들이 차 문화의 꽃을 피웠다. 고려의 문인들은 손수 차를 끓였고, 차를 마셔 선(禪)을 수행하는 도(道)에 이르렀다. 일반 백성들도 다점(茶店)에서 돈이나 베를 주고 차를 사 먹을 만큼 기호 음료로도 인기를 누렸다. 한편 이 시대에는 어린 차라는 뜻을 지닌 유차가 유행이었는데, 이른 봄의 잔설 속에 싹튼 새순을 따 만든 차라 그 향기와 맛이 일품이었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차 생활이 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불교문화의 발전과 함께 더욱 융성해져 왕실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국가 의식, 불교 의식에 차를 올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특히 왕이 신이나 부처에게 제(齊)를 올릴 때도 임금이 먼저 차를 청하면 신하가 차를 올리는 제반 의식인 진다의식이 행해졌다. 또한 왕이 죄인에게 참형을 결정하기 전에 신하들과 차를 마시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보다 공정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리도록 노력했다.

차는 국제 외교상 중요한 예물로도 사용되어 송나라에서 고려에 보낸 예물 중에 용봉차(龍鳳茶)가 들어 있었고, 고려가 원나라에 예물을 보낼 때에는 향차 등을 넣어 보내기도 했다. 나라에서 사신에게는 진다의식을 갖추었고, 조칙을 가져오지 않은 사신에게는 차를 베풀고 간단한 인사를 한 후 객관으로 안내했다. 이렇게 중국과의 무역에서 차와 다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자 귀족과 승려들은 앞다투어 중국의 차와 다기를 사모으기도 했다.

차를 담는 그릇, 그것은 차와 그릇의 어울림으로 그 격을 한층 더 살릴 수 있다. 고려의 찻잔은 완(碗) 및 잔(盞)이 있다. 고려다완의 으뜸은 청자다완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오는 비색소구(翡色小具)의 비색이 바로 청자다완의 빛깔이라 생각된다. 고려인들은 이 비색을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형태의 다기를 공다나 진다의식에 많이 사용한 점은 도자기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마시는 차의 종류에 따라 형태와 빛깔과 재료를 달리했던 고려인의 도자기술은 세계에서도 제일가는 고려청자와 같은 예술품을 만들어냈다.

청자란 푸른색의 자기를 말하는 것으로 몸체를 이루는 회색의 태토 위에 씌워진 푸른색의 유리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 유리질의 성분과 색깔을 내는 철분으로 구성된 유약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어 태토의 바탕 위에서 마치 비취옥과 같은 푸른색을 내는 것이다. 고려 찻잔 중 특히 잔대가 높은 것은 의식용이고, 낮은 것은 일상용으로 쓰였으며, 후대에는 잔대가 거의 사라진 형태로 변형되기도 한다.

고려시대의 차 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문헌으로는 송나라 서긍이 사신으로 고려에 와서 약 1개월간 개경(開京)에 머무르면서 저술한 책인 『고려도경』이 있다. 서긍은 자신이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아 그 집에서 차를 대접 받았던 일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초대 받은 일행이 나란히 앉자 주인의 아들이 다과를 올렸고 예쁜 젊은이가 찻잔을 돌렸다. 왼손에 찻주전자를 들고 오른손으로 차선을 끌었다. 윗자리부터 차를 따르기 시작하여 아랫자리에 이르는 동안 조심하여 전혀 난잡함이 없었다. 무릇 연회가 있으면 뜰에서 차를 달이는 데 잔은 은으로 만든 뚜껑으로 덮고 차를 내어 올 때에는 천천히 걸어서 내온다.(중략) 그들은 사신이 차를 다 마시는 것을 보면 기뻐하고 다 마시지 않으면 자기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하여 언제나 억지로라도 차를 다 마시게 된다."

왕이 죄인에게 참형을 결정하기 전, 다례의식을 행하여 보다 공정하고 신중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중형주대의라고 한다. 『고려사』에 적힌 내용을 종합해볼 때 왕은 신하들과 함께 차를 마신 후 신중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례는 법을 다루는 사헌부에서 다시에 다례를 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고려 때에는 불교의 성행으로 역대 임금이 불타의 제자를 자처했던 만큼, 임금이 손수 불공을 위한 말차(沫茶)를 제조했던 일도 흔했다고 『고려사』는 전한다. 승려들이 즐기는 차는 궁중의 차가 되었고 온 나라 안에 널리 퍼졌다. 절 주위에는 차 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다촌(茶村)이 번성하여 절에서 필요한 차를 가꾸는 붐이 일기도 했다. 특히 승려들 사이에 절에서 차 끓이는 솜씨를 겨루는 풍속이 있었는데, 고려시대 사찰에서는 그만큼 차 생활을 소중하게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큰 절에는 절 소유의 차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통도사지』에는 차를 만들어 절에 바치는 다촌이 현재의 언양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렇게 고려에 와서 차의 사용이 늘어나자, 궁정에는 다방(茶房)이라 하여 차를 공급하는 관청이 생겼고, 사헌부에는 다시(茶時)라는 티 타임이 있어 매일 한 번씩 관리들이 모여 차를 마시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한편 사원에서는 차 끓이기를 서로 겨루는 명선(茗禪)이라는 풍속이 행해졌다. 또한 궁중 밖에서 왕족에게 차를 올리거나 준비하는 일을 위해 다구와 짐을 나르는 다군사(茶君士)가 소속되어 있었다.

명전이란 차의 맛을 비교하여 평하고 겨루는 것으로 주로 승려등 간에 유희 삼아 행해진 대회이다. 당시에 차와 물을 품평하는 일은 불가의 풍습이었다. 고려 의종 13년(1159)에 왕이 현화사(玄化寺)를 방문했을 때 여러 승려들이 각기 다정(茶亭)을 설치하고 왕의 가마를 맞아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미기를 경쟁하였다고 했는데, 이 역시 일종의 명전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명전은 조선 초엽에 '투다(鬪茶)'라는 말로 쓰였는데, 차 맛 겨루기보다는 그 과정을 중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절의와 기개의 상징, 차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때 최승로가 죽자 왕은 엄청난 양의 차를 하사했고, 서희 장군이 죽었을 때도 천 가지나 되는 엄청난 양의 차를 하사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훌륭한 신하들에게 공을 세운 대가로 차를 하사하는 이유는 세한정신(歲寒精神) 때문이다. 절의와 기개를 상징하는 세한정신은 소나무와 감나무로 대표되기도 하는데, 차 역시 충절정신을 기르는 데 바탕이 되고, 정신 함양에 큰 도움을 주는 양식으로 인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