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차의 맥이 근세중엽까지 근근이 이어오다 초의선사, 다산 추사등 다인의 등장으로 제 중흥기를 맞이했다. 특히 초의선사는 우리차의 우수성을 그의 저서인 다신전, 동다송 등을 통해 우리 고유의 다도관을 확립하여 우리차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다인이다. 그 후 일제에 의해 1941년 이후 전남 보성, 나주, 광주등에 근대적인 차재배를 해오다가 1969 농특사업의 일환으로 차재배가 늘어났지만 커피문화의 범람으로 다시 쇠퇴하다가 최근 우리차의 우수성 등이 계속 알려짐에 따라 1988년이후 우리차는 매년 20-30%의 증가추세다.
초의선사의 다도
초의선사께서 그의 저서인 동다송에서 찻잎을 따는데 묘(妙)를 다하고, 차를 만드는데 정성을 다하여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달이는데 중정(中正)을 얻으면 차의 체(體)와 신(申)이 고르게 되고 건실함과 신령스러움이 어우러지게 되니 이를 다도라 했다. 이는 일본, 중국등의 다도는 차마시는데에 중점을두는 형식에 치우친 다도관에 비해, 우리의 다도관은 수확, 제다, 달이기, 시음 등의 매우높은 다도관으로 평가된다.
백운옥판(월산)차 : 1937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이한영(1867-1960)씨에 의해 우리나라 차에 백운옥판차란 상표를 붙여 판매한 최초의 차로 잎차이다. 처음에는 생산지역명의 백운월산차라 하다가 생산되는 옥판산의 이름에 따라 백운옥판차라 했다.
신농신편(1885)
안종수(1849-1896)가 집필한 최신농서로 전체 4권중 3권에 차의 재배와 가공법이 기술되 있는데 중국식과 일본식 농업기술이다. 1883년에 농상사에서는 차를 권장하게 되면서 작설차의 재배를 위한 조사를 하고 1885년에 청국의 구강도에서 차나무 모종 6,000주를 가져와 심었으므로 기술서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인 사이고우(西鄕靜夫)는 조선농정사고(朝鮮農政詞考:1921)에서, 전남 고흥 출신이고 김옥균과 같은 개화파로 학부대신에 오른 신기선(申箕善)이 신농신편의 저자인 설도 있다.
조선의 차와선
전남도청에 농무관으로 온 이에이리(家人一雄)에 의해 지어진 우리나라 차재배 및 생산실태를 파악한 책으로 근대 차사를 아는데 유익한 책이다.
보성녹차재배
우리나라 차생산 및 재배의 최대산지로 1941년 일인에 의해 30ha로 시작된 차밭은 1969년에 농특사업으로 1973년에 580ha로 증가하다가 커피문화의 범람으로 그 재배가 줄다가 최근 1998년도는 311ha로 우리나라 최대 산지를 이루고 있다.
장원산업(태평양)의 차재배
전남강진, 해남, 제주도 등에 약 200ha를 기업적으로 재배해 차소비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재배는 기계화 등으로 재배기술 수준이 높아 우리나라 차재배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