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품속 같은 따뜻함이 밴 공간
신라시대 사원 다실, 다연원
다연원은 경주 남산의 창림사에 있었던 신라 때의 사원 다실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면 창림사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옛 궁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신라의 승려 김생이 창림사 비문을 썼다는 기록으로 보아 8세기 초 창건된 사찰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기록을 종합해볼 때 창림사는 옛 왕궁터에 절을 지어 선왕을 봉안하고 기원하는 왕의 원찰이었고, 다연원은 국왕이 쉬면서 기도할 수 있는 객실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의 다실은 누각과 다헌
차 문화가 성행했던 고려시대에는 대자연 속의 누각이나 정자 혹은 초당 등에서 차를 마셨다. 승려들은 대나무 숲, 소나무 밑이나 돌 위에 앉아 차를 즐겼고, 다헌이라 하여 차를 마시는 집을 따로 짓기도 했다. 누각과 정자는 산세가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지은 집으로 실내와 실외의 구분 없이 탁 트인 점이 특이하다. 누각은 대개 2층으로 지었으며, 정자는 방이 있는 것도 있었다. 또한 재와 당에서도 차를 즐겼다.
조선의 다옥과 다실
조선시대에는 승려뿐 아니라 선비들도 산림에 묻혀 안빈낙도하며 차를 끓여 마셨다. 평양의 대동강변 만경루에는 차 화덕이 남아 있으며, 평남성 안주의 성안에 있는 백상루에서도 차를 끓여 마신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차 마시던 집이나 다실은 대체로 검소했다. 문하에 서거정을 배출한 유방선(1388∼1443)은 책을 보며 차를 마시는 방을 '누추한 방'이란 뜻의 '누실'이라 이름 지어 새겼고, 허균은 '누실'이라는 서재를 겸한 다실을 '누실명'이란 시에 기록해 놓았다. '다옥'이란 신위가 자신의 오두박집을 다옥이라 부른 데서 연유된 말로 차 마시는 집을 뜻하며, 대개 띠나 억새나 짚으로 지붕을 이은 초가집이었다. 당시 다실의 이름으로는 추사가 쓴 죽로지실 외에 초의 의순이 만년에 거쳐했던 일로향실, 신위가 '초의집'의 서문을 써주었던 선원 이름인 다반향초지실 등이 있었다. 오늘날 일본 다실은 16세기부터 독자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원류는 한국의 민가와 암자 혹은 한국의 정자라는 것을 국내는 물론 일본의 학자들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김명배의 『한국 다도의 구조적 특성』
일상생활과 예술 세계를 연결짓는 완충지대
한 칸짜리 작은 초가집, 일본의 다실
일본의 다실은 집 안의 어떤 부분에도 종속되지 않은 채 집 밖, 마당에 세워진 단독적인 공간이다. 다실은 크게 네 공간으로 이루어지는데, 한쪽에 다구를 씻는 곳이 있고 초대된 손님이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기다리는 공간과 노지라고 불리는 작은 길이 있다. 이는 다실과 손님이 기다리는 공간을 연결시켜주는 통로이다. 다음에는 허리를 굽히고 '니지라구치'라는 작은 문을 통해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낮추어 기어들어가듯 다실로 들어간다. 이 문은 다도의 독특한 양식으로 그 크기는 가로세로 60㎝정도이다. 이렇게 문이 작은 이유는 다실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속세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같은 자격으로 만나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실 행다의 예절과 순서
- 주인과 손님은 찻자리에 앉아 예를 갖추어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는다.
- 주인은 찻상보를 걷어 오른쪽 정위치에 놓고 물식힘 사발도 찻상보 앞 제자리에 놓은 후 탕관에서 끓인 물을 붓는다. 이때 물의 양은 잔의 수만큼 데울 양이면 된다.
- 물식힘 사발을 들어 다관에 물을 따른다. 뚜껑을 닫고 오른손으로 다관을 잡고 잔에 왼편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따른다.
- 두 손으로 차통을 갖고 와 뚜껑을 열고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차시를 가져온다. 차를 두번에 걸쳐 다관에 넣은 후 물식힘 사발에서 식은 물을 다관에 천천히 따른다.
- 차가 우려지는 동안 찻잔 예열한 물은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한바퀴 돌린 후 물식힘 사발에 버린다.
- 다관을 오른손으로 잡아서 엄지를 다관 뚜껑을 살며시 누르면서 왼손을 오른쪽 엄지를 살짝 가리면서 정성스럽게 차를 따르기 시작한다.
- 차를 공손하게 손님에게 권한다. 이때 차를 마실 때는 모두에게 차가 돌아간 뒤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며 주인이 '차 드십시오'라고 할때 '잘 마시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한 후 연장자가 잔을 들기를 기다린다.
- 잔을 두손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손하게 왼손바닥 위에 받치듯이 잔을 놓고 오른손으로 감싸면서 마신다.
오란설에게 보내는 답시
내 오두막은 소쇄하게 왕성에 숨어 있고 거느침채 아래 남산에는 이내가 가로 끼었네 돌을 두른 묵지는 비 올 기미 머금었고 창 앞의 갈대 잎은 가을 소리 도와주네 손님이 오니 다옥에 외로운 연기 피어나고 공작에서 물러나 사는 이끼 낀 뜨락에는 두 학이 노네 손님이 오니 다옥에 외로운 연기 피어나고(중략)
- 신위 -
우리집 다실은 어떻게 꾸밀까?
우리나라의 다실
자유로운 공간 활용
옛 선조들은 손님이 오면 자연과 가장 가까운 공간인 정자나 대청마루, 사랑방에서 차를 즐겼다. 다인들이 특별한 규칙을 세우거나 공간의 쓰임, 크기를 지정해서 다실을 꾸몄다는 기록은 없지만, '격식보다는 자유로운 생활'이 우선시 됐음을 곳곳에 기록된 고전 문헌과 다실로 유추해볼 수 있다.
활래정을 통해 본 조선시대 다실
강릉 선교장의 다실인 활래정은 조선 말 사대부의 다풍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유적이다. 여기는 특히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는 부속 다실이 마련된 건축양식과 8대를 전해 내려온 손때 묻은 야외용 차통 등 귀중한 다구 97점도 전시되어 있다. 다실로 쓰기 위해 오은거사 이후가 활래정을 지은 시기는 순조 16년인 1816년. 활래정의 주인 이후는 근세의 대표적인 다인 정약용ㆍ김정희ㆍ초의 의순 등과 교류하며 차 한잔으로 친교를 맺었고, 수 많은 인사들이 이곳에 들러 시화를 남기고 풍류를 노래했다.
현대의 다실 꾸밈
다실에 반드시 진열해야 하는 소품은 없다. 본인의 취향에 따라 아담하고 정겨우며 따스한 정감이 느껴지는 정갈한 방 꾸밈이 기본 요소이다. 방의 크기도 정해진 바가 없으나 대략 5명이 앉을만한 공간 정도면 무난하고, 다실 내부는 차와 연관된 몇 가지 소품으로 장식하여 멋스러움을 더해준다. 한옥의 경우 사랑방이나 안방을 다실과 겸하여 꾸미는데, 대개 방 하나를 다실로 정하거나 서재와 겸한다. 공간이 협소하면 거실에 문을 달거나 가리개를 하여 다실로 사용하고, 차 마실 때는 적당한 크기의 돗자리나 대자리, 방석을 마련한다.
다실의 네 벗
일반적으로 다실 꾸밈을 할때 빼놓을 수 없는 네 벗은 향과 꽃, 물, 그림이다. 다실은 차를 마시는 공간이자 예술 감상을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가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4가지 요소는 기본적으로 갖추어 놓는 것이 좋다. 다실 꾸밈을 더욱 고풍스럽게 하고 싶다면 한쪽 면에는 족자를 걸거나 가리개를 놓아 공간을 분리하는 방법도 있다. 여름철에는 차와 어울리는 대나무 발과 돗자리를 배경으로 전통 부채인 죽선부채, 윤선, 목단 수미선, 황칠 곡두선등을 장식하면 단아한 다실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