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문화의 바탕, 찻잔
우리나라 옛 잔이란?
잔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용기 중 하나다. 그릇을 처음 만들 줄 알게 된 신석기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잔은 제작 기술 용도 그리고 취미에 따라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잔은 각 시대의 공예와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반영한 '시대의 거울'과 다름없어 많은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현존하는 잔들은 재질에 따라 목기, 토기, 자기, 금속기 등으로 분류되며 용도에 따라 물잔, 찻잔, 술잔, 제기잔 등으로 분류되는데 각 시대별 잔들은 독특한 형태를 자랑한다.
삼국시대의 잔
토기는 우리 문화유산의 하나로 1만년동안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생활의 필요에 따라 지역과 시대에 따라 수 많은 종류로 다양하게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전국에는 그 당시 토기를 만들고 사용하였던 가마터와 생활터, 무덤 등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선사시대의 토기잔들은 물론 삼국시대의 가야, 신라, 백제의 토기잔들은 오늘날 사용해도 손색없을 형태와 질감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사슴뿔 모양의 잔이나 수레바퀴 달린 뿔 모양의 잔, 오리 모양 등 상형잔들은 당신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흥미로운 모습을 통해 당시 문화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삼국시대의 토기잔들 가운데 손잡이 달린 잔들은 손잡이의 크기나 형태 그리고 잔의 형태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손잡이 달린 굽다리잔의 날씬한 형태와 두 손잡이 달린 잔, 손잡이 달린 병 모양 잔 등 다채로운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찻잔의 모양에 따른 분류
우리나라의 찻잔 모양에는 잔, 구, 완, 종이 있다. 잔의 입이 넓고 아래는 좁으며 몸통이 낮은 것을 잔이라 하며, 잔의 입이 넓고 아래는 좁으면서 굽이 높이 받쳐져 있는 것을 배라고 한다. 구는 속이 깊고 잔 둘레의 모양이 거의 U자 형태이고, 완은 잔 둘레의 모양이 벌어진 V자 형태이며, 종은 잔이나 완보다 지름이 더 작고 잔 둘레의 모양이 곧추선 원통형으로 이들 모두의 높이는 거의 같다. 흔히 가루차는 거의 완에 마시는데, 구도 가루차 그릇이다.
세계적인 청자 문화의 번성
고려시대의 잔
고려시대는 차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청자 문화가 번성하였는데, 이 시대의 잔들은 귀족적이며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팔관회, 연등회 등 의례에도 차는 빼놓을 수 없었으므로 찻잔 역시 귀중하게 만들어져 우리 도자의 진수를 표현하였다.
찬란한 자기 문화의 꽃, 고려청자
비색과 독특한 제조 기법으로 찬란한 자기 문화를 이루었던 고려청자는 3세기경 중국에서 빚기 시작,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 무렵부터 생산되었다. 7∼8세기경 중국으로부터 차 문화가 전파되면서 귀족ㆍ왕실ㆍ승려사이에 차 마시는 습관이 급격히 확대되었는데, 이 때 찻잔의 제조를 위한 도자기의 수요도 크게 증가하였다. 당시 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 대부분이 차를 마시던 그릇인 다완이라는 사실은 고려시대의 융성했던 차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12세기에는 상감청자가 개발되어 청자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몽고 칩입 이후 청자는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분청자기로 변모하게 된다.
설록차뮤지엄 오 설록 특별전시실 잔 갤러리
제주 서광다원 내에 위치한 '설록차뮤지엄 오 설록'에는 각 시대에 따른 1백 20여 점의 옛 잔들이 특별 전시되어 있다. 신성한 물 혹은 차, 술을 담아 쓰던 잔들에는 당시의 미의식, 자연 숭배 사상이 투영되어 있어 우리 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옛 잔의 역사는?
조선 도공들과 일본 도자 문화
조선시대의 잔 -불교 문화의 쇠퇴와 함께 차 문화도 침체되었지만 사신이 올 때나 왕실에서는 일상적으로 다례를 베품었음을 보아 음다 문화의 명맥은 계속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다례나 제사, 의례 등에 사용될 찻잔, 제기잔, 의례용 잔의 생산이 계속 되었는데, 조선 전기 왕실에서 주로 사용하던 금속기는 차츰 도자기로 변모하였다. 조선 도자는 분청사기에 뒤이어 백자가 제작되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백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 막사발과 일본 다완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의 관요 이외에 생활자기를 만드는 지방 가마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그중에서 남해안의 지방 가마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막사발들은 일본의 다도인 들이 즐겨 사용하여 '고려 다완'의 전설을 낳게 되었다. 일본의 이러한 다완 붐은 임진왜란 때 우리 도공을 잡아가 그들의 도자 문화를 새롭게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 끌려간 조선 도공들에 의해 전해진 고려 찻그릇은 16세기 후반 우리나라에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나 일본에서는 무려 5백여 년 동안 추앙을 받았으며, 당시의 고려 다완은 현재 일본에서 국보 또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 다인들에게 고려 다완은 '마음에 평화와 기쁨 그리고 숭고함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여겨질 만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